감기인 줄 알고 동네병원을 열흘 정도 다녔습니다. 남편과 동네에서 작은 과일, 야채가게에서 장사를 하며 시간 내기 힘들었지만, 엄마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날은 남편한테 가게를 맡기고 경환이를 데리고 시내 이비인후과를 찾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추천서를 써 줄 테니 지금 바로 부천성모병원으로 가보라고 말했습니다. 장사 때문에 내일 오전에 가보겠다고 하자 장사가 중요한 것 같지 않다며 지금 바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부천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경환이 머리를 CT 촬영했습니다. 검사 결과 머리에 종양이 있고 물혹이 보인다며, 그보다 더 중요한건 뇌종양 중에서도 어른들한테나 올 수 있는 아주 심각한 악성 종양이 지금 내 아이한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살 수 있는 시간은 두 달, 그것도 수술을 당장해봐야 한다는 말에 멍하니 눈물만 나왔습니다.

2010년 4월 5일 가게 문을 닫고 우리 부부는 경환이한테만 매달렸습니다. 수술을 위한 검사를 마치고 7일 아침,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종양이 중추신경계에 있어서 물혹만 일부 제거하고 건드려보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2주 후 퇴원하고, 서울의 병원에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위험한 상황이라 입원해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치료 도중 머리에 문제가 생겨 3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힘든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한번은 한달 동안 열이 38도까지 올랐고, 항생제를 계속 써도 효과가 없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고통스러운 방사선 치료 기간 수 차례 힘든 고비를 넘겼지만 이번은 너무 힘들어 그냥 죽고 싶었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지만 사랑하는 내 아들 경환이를 보면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놀랍게도 경환이가 일어나 한걸음, 두 걸음 걸었습니다. 어지러워 했지만 경환이의 의지는 놀랍게도 강했습니다. 척박한 마음 안에 평안이 오면서 막힌 가슴, 머리,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여유와 웃음을 만났습니다.

“엄마, 나 병원에 갔을 때 아픈 것처럼 머리가 아파”라는 경환이 말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엄마 병원에 데려다줘”얼마나 아프면 병원에 가자고 할까라는 생각에 기도를 하고 또 기도를 했습니다. 짐을 챙겨 11월 2일 부천성모병원 소아과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경환이는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계속 토했습니다. “엄마 눈을 뜨면 어지러워”기력 없이 눈을 감고 침상에 누워만 지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흔들어 깨우면 “엄마, 나 그동안 잠 못 잤잖아 그래서 계속 자고 싶어”라고 말했습니다.

“경환이가 올해를 못 넘길 것 같습니다. 머리 전체에 전이되어 다른 수술이나 항암치료도 이제 소용이 없습니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남편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자고 했습니다.

12월 8일,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사했습니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목욕도 하고 이발도 했습니다. 반짝반짝 우리 아들 너무 예뻤습니다. 간호사들도 혈관이 없어 주사 놓을 때마다“아프겠다”라며 함께 걱정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병동에 크리스마스 성탄행사가 있던 12월 23일, 눈을 못 뜨고 몸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가족과 함께 맞이한 크리스마스여서인지 경환이는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전날 수녀님의 “경환아, 크리스마스선물 주고 싶은데 가지고 싶은 것 있어?”라는 질문에 말도 못하던 경환이는 똑 부러진 목소리로 “15만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뭘 살거야?”라는 말에 경환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산타할아버지(혈액종양내과 교수)의 선물은 예쁜 잠옷과 15만원이었습니다. 집에 잠시 다니러 온 12월 28일 경환이가 기다리기 힘들 것 같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경환이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지만, 잠을 자는 것처럼 편해 보였습니다.

“경환아, 천국에 먼저 가 있어. 엄마도 가니까”준비해 온 잠옷으로 갈아 입혔습니다. 자기 가는 시간은 안다고 하더니 이렇게 보고 싶은 사람 다 보고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고 엄마, 아빠를 덜 아프게 준비했나 봅니다.

어린이라 수의대신 양복을 입혀 보내자는 수녀님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평소 바지는 딱 맞게 입고 상의는 소매를 길게 입었던 경환이, 수녀님은 놀랍게 그렇게 준비해 오셨습니다.

빨간 장미를 좋아했던 경환이지만 입관식에는 흰 장미로 머리에 화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양복까지 입은 내 아들 경환이는 참 예뻤습니다. 병원에서 수술할 때마다 울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항상 우는 엄마의 모습으로 수술실에 보냈었는데 마지막에는 눈물 보이지 않고 편하게 보내주려고 울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걱정했던 병원비 전액은 호스피스 후원비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환이 모습(입관식)을 너무 예쁘게 기억에 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족에게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경환이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말씀을 주시고, 이 형편이 재앙이 아니라 곧 평화와 소망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하느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