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지에게

편집자주 : CMC 이념을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국내유일 대학병원 낮병동 ‘알코올의존치료센터’가 올해 10주년을 기념하여 자서전을 발간했습니다. 아래 글은 자서전 중 한 편으로, 센터에서 치유받은 환자의 딸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세월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듯 아빠 머리 위에도 서리가 내린 듯 흰머리가 가득하네요. 정신 없이 그냥 시간의 흐름 속에 맡겨 지내온 듯 한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으로 만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빠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리 많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요즘 아빠의 모습은 저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네요.

어려선 부모로서의 자격을 의심할 정도로 미워하고 원망도 많이 하며 어린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선 먼저 떠난 동생을 원망하며 나 혼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원망과 증오로 가득차서 세상을 사랑할 줄 모르는 그런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가족치료시간 수녀님께 말했듯, 잊지 못하는 그날 바쁜 직장생활을 쪼개 휴가를 내고 이곳에 처음 아빠를 모시고 상담하러 온 그날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자신 없고 두려웠어요.

당신께서 변해야 겠다 생각하며 ‘알코올치료 병원에 입원할까’하고 제게 물어왔을 때 저는 부모가 학교에 아이를 처음 보낼 때 심정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많은 희비가 교차했답니다.

잠깐의 생각이겠지 하고 말았는데, 이곳에 상담을 오고 치료를 시작하는 아빠를 보며 사람의 본성은 변화될 수 없다고 믿어왔던 제가, 변화될 수 있는 환경만 주어진다면 사람은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아빠의 하루 일상생활들을 들으면서 뒤돌아 생각해보니 술 취했을 때하는 행동으로 인해 따뜻한 말 한번 건낸 적이 없었구나! 엄마 없이 자식들을 보살피며 본인도 힘들어서 그랬을 거라 이해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아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아빠가 배움의 길을 가지 못하고 생활해 오셔서 쓰고 읽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는데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나날이 자신감을 가져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알코올의존치료센터에 대한 감사함을 많이 느낍니다.

아빠가 했던 말 중에 이 말이 떠오르네요. 나는 유치원 과정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라서 많이 배운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하게 되니 자신감이 없지만, 열심히 할 거라는 말,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화되듯 아빠도 자신의 삶의 변화에 감사할 줄 알며 변화하시려는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요즘 노트에 한 줄 한 줄 지난 삶의 자서전을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참 보기 좋았어요. 아버지가 잠든 사이 몰래 노트를 넘기며 읽었을 때 정말 가슴 깊이 많이 눈물을 흘렸답니다.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의 삶에 대한 아픔을 이해하고 너무나 가여워서 어떻게 해야 할이지 많이 힘들었어요. 좀 더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못해왔던 제 자신을 반성하고 앞으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빠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지난 시절 아픈 상처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겠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상처를 치유하고 아끼고 감사하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변화에 시작을 준 알코올의존치료센터에 감사하며, 처음 왔을 때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준 다니엘라 수녀님,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벤자민 수녀님, 가족치료를 통해서 저의 가슴속 깊이 간직했던 상처들과 가족의 사랑을 일깨워준 마리타 수녀님, 아버지의 친구가 되어주신 이곳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빠! 아프지만 항상 행복해 하며 인생을 즐기며 산다면 건강도 빨리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 참 많이 감사합니다. 저의 아버지인게 자랑스러워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