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해요]

봉사도 중독이다

금요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 1층 자원봉사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먼저 ‘호호호’ 수녀님이 상쾌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반가운 동료들과 함께 커피한잔과 수다를 같이 마시며 환타빛 봉사자 가운을 걸친다. 호스피스 병동의 봉사도 9년을 넘어가고 있다. 이제 성빈센트병원은 친정집처럼 자연스럽게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수많은 역사와 궂은일, 기쁜 일이 손때 묻은 가방처럼 늘 내 어깨에 메어져 푸근함을 준다.

어느 날 갑자기 맞은 친한 친구의 죽음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안일하게 살아온 내 모습을 뒤돌아보게 했다. 내 자신에 부끄러움과 허무함이 강물처럼 밀려왔다.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라는 주님말씀이 가슴을 내리쳤고, 남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조급함으로 시작한 호스피스봉사.

나에게 베푸신 은혜는 너무나 많은데도 이 우매한 인간은 깨닫지 못하고, 교만과 오만에 사로잡혀 살았음을 뉘우치면서 시작된 봉사는 오히려 더 큰 보람과 기쁨으로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채워주셨다. 물론, 노력함에도 잘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주책으로 주위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아픔을 줄때도 많았지만,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대할 때는 좀 더 그들의 마음이 되어 손을 꼭 잡아주며 기도하고, 위로하는 나 자신이 됨을 솔직히 고백한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더 채워져야 할 부분도 상당수 있지만...

많은 봉사자들이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천사를 보는 듯하다.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480명의 성빈센트병원 봉사자들이 환타빛 가운을 휘날리며 병원 곳곳에서 사랑을 베푸는 큰 힘은 우리 병원이 전국 순위에 들 만큼 자리 잡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70이 넘은 연세에도, 몸이 조금 불편하신 분들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참 행복이 무언지 가늠하게 된다.

‘봉사도 중독이다 ’나 자신도 만성질환자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이일을 할 것이다. 만약 내 삶에서 봉사를 빼버린다면 아마 죽을 만큼 무기력한 금단현상이 올것 같다. 아니면 기꺼이 하느님 나라로 가야 할 시간이 될 것이다.

“은총으로 주신 이 몸은 송두리째 기증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립시다” 늘 환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이 말이 절실하게 나에게로 다가온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화내고 슬퍼하며, 후회와 두려움에 떨면서도 삶의 애착을 놓지 못하는 환자들의 아픈 마음이 언젠가는 나의 모습이란 걸 끊임없이 다짐하면서 오늘도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린다.

오늘따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마운 것은 아마도 봉사자가 꼭 갖춰야 할 사랑과 친절, 배려, 겸손, 감사의 마음이 조금씩 몸에 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리모델링으로 더욱 화사하고 멋있어진 병원로비에서 은은히 풍기는 커피 향을 음미하며 괜히 어깨를 으쓱해본다. 나는 성빈센트병원의 행복한 봉사중독자이니 말이다.

글_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 봉사자 백민자(막달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