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톨릭의대를 2007년에 졸업하고(48회)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인턴 및 내과 전공의 과정을 거쳐 내과 전문의를 올해 취득하였습니다. 전공의 과정과 병행하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소화기내과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지금은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면역 및 감염질환 연구실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부 시절, 기초 의학의 이론 및 실습을 공부하면서 막연하게 가졌던 의문이 있었습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기초의학이 과연 임상에 얼마나 적용될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본과 2학년 2학기부터 임상 과목들을 공부하면서 암기해야 할 방대한 지식들. 그 속에서 기초 의학에서 배운 원리들은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 간혹 임상 과목을 공부하다가 중간 중간에 나오는 기초 원리와 기전은 건너뛰어 공부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나서 실제 임상에 나가 환자를 보고, 전공할 분야를 정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기초 의학이 임상의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의 임상 의학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서도 생명 과학에 기반을 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석사 학위를 위해 논문을 준비하면서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돌봐야 하는 임상 의사로서 실험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지만, 임상의에게는 환자를 직접 대한다는 면에서 보다 인간 질병에 접근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석사 지도 교수님이신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윤승규 교수님께서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을 추천해 주셔서 알아보게 되었고, 그곳에서 전국 각지의 M.D.들이 랩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의 과정을 마친 M.D.의 경우, 군의관 또는 공중보건의로 의무 복무를 마쳐야 하는데, 의과학대학원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할 경우 전문연구요원으로 자동으로 편입되어 4년간 학업을 지속하면 병역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전문의를 취득하고 바로 의과학대학원에 입학하여 현재 박사 1년차로 재학하고 있습니다.

저는 임상에서의 제 전공 분야(소화기내과 간 분과)를 살려 이곳에서 주로 바이러스성 간염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난치성 질환인 B, C형 바이러스성 간염 및 간경화, 간암에 대한 면역학적 및 분자생물학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이들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기전을 밝히는 것이 현재 목표입니다. 아직 한 학기밖에 지나지 않아 배우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제 스스로 실험 계획을 세우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한 학기 동안 가장 절실히 배운 것은, 연구는 인내와 창의력의 결정체라는 사실입니다. 밤을 새워 환자를 돌봐야 하는 전공의 과정에 비해서 몸은 덜 피곤하지만 실험의 실패 속에서도 결과를 기다릴 수 있는 꾸준한 자세가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는 약 70여 명의 의사(한의사 및 치과의사 포함)가 재학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저와 마찬가지로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으로 온 분들입니다. 간혹 의과대학 졸업 직후에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입학한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출된 M.D.-PH.D. 선생님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대와 연세대에도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과 유사한 프로그램이 생겨 연구에 관심이 있는 M.D.들을 받고 있습니다. 모교에도 이러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많은 후배들이 의과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