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태풍 하이옌 피해지역 의료지원 수기]

필리핀 타클로반 긴급구호 지역에서 ‘초심’을 찾다

[가톨릭대 성의교정 김영훈 교수가 필리핀 타클로반 긴급구호 지역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

2013년 11월 8일, 슈퍼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동사마르 주(타클로반 지역)에 상륙했다. 나는 가톨릭대학교 의료협력본부를 통해서 의료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 소홀히 했던 봉사활동을 위해 자원했다. 이렇게 해서 태풍 하이옌을 통해 필리핀 타클로반과 인연을 맺게 됐다.

범세계적인 재난구호가 시작됐고, 우리 정부도 코이카와 코피이를 통해 대한민국 해외긴급 구호대(KDRT:Korea Disaster Relief Team)를 긴급 파견했다. 가톨릭대학교 의료협력본부도 한국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을 통해 후원금 1,000만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나는  현지 상황이 조금 호전된 시점인 11월 29일 3진으로 파견됐고, 내가 속한 3진은 재난구조 위주의 1?2진과는 달리 업무성격도 조금 바뀌어서 의료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근무지는 타클로반 시내의 Saint Paul’s Hospital 응급실, 주 업무는 응급실 주변 NGO(80여 단체) 및 필리핀 의료기관에서 의뢰한 응급환자 진료였다. Saint Paul’s Hospital 역시 피해가 컸다. 3차 의료기관인데 모든 의료장비, 의무기록이 침수돼 병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타클로반이 필리핀의 제 2도시니, 병원의 피해만으로도 현지 의료체계가 거의 붕괴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간에는 환자 중심으로 생활하고, 야간에는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이기 때문에 조금 여유가 있어 의료기관을 관리하는 필리핀 보건성의 Health Cluster 회의 혹은 통합 관리기구인 UN산하 OCHA 회의에 참석했다. UN에 제출하는 SPEED 진료통계 작업을 하고, 하루를 돌아보는 회의 역시 저녁 혹은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응급환자는 산모와 아이들이 많았다. 필리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오다가 아이를 낳은 산모도 있었고, 응급실에서 태어난 아기도 있었다. 이 신생아는 아프가점수 1.0(즉각적인 소생술을 요하는 매우 허약한 신생아)으로 모든 의료진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려냈다.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생존단계를 벗어난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단계였으나 떠나기 전 가슴 아픈 일들도 많았다. 생활터전을 모두 잃어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어린 아이들이 여기저기 찔리고, 찢기고, 화상을 입는 등 외상 환자가 많았다. 가족 단위로 엄마들이 아이들을을 데려와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았고, 깨끗한 물이 없어 약국에서 가루약을 물에 타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엇다.

이번 의료봉사는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지만, 처음 의사가 됐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힘든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느낌,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돌아올 즈음에는 이런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어느 곳에 재난이 일어나야 가능하기 때문에 조금 어폐가 있지만, 재난은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하니 또 파견 나갈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은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항상 준비돼 있는 상태로 생활할 생각이다. 이런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